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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인사이트365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도서 리뷰 썸네일
북인사이트365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도서

 

내가 세운 고정관념의 틀이 사정없이 무너져 내리던 어떤 날에 대하여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세상과 타인, 그리고 나 자신을 바라보는 저마다의 '기준'과 '틀'을 세우게 됩니다. 남들보다 한 걸음 앞서가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끼기 위해, 혹은 통제할 수 없는 세상의 불확실성 속에서 불안감을 덜어내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상황을 구분하고 카테고리를 나누곤 하죠. 저 역시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하거나 블로그를 운영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것은 성공할 방식", "저것은 실패할 방식"이라며 단정 짓고, 내가 만들어놓은 편협한 정답의 울타리 안에 갇혀 스스로를 조급하게 만들었던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중 룰루 밀러의 과학 에세이이자 서사시인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Why Fish Don't Exist)》라는 다소 낯설고 충격적인 제목의 책을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과학적 지식을 전달하는 책일 거라는 지레짐작과 달리, 이 책은 분류학의 선구자였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집착적인 삶을 추적하는 한 편의 흥미진진한 수수께끼이자, 과학의 탈을 쓴 치열한 인간 삶의 고백록이었습니다. 책장을 넘길수록 제가 당연하다고 믿었던 수많은 정의와 상식들이 사정없이 흔들렸고, 확신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인간의 오만이 얼마나 위태로운 것인지 뼈아프게 깨달아갔습니다.


혼돈이라는 거대한 바다와 질서를 부여하려는 인간의 지독한 집착

책의 중심 인물인 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지진으로 인해 자신이 평생 모아둔 수천 개의 어류 표본이 파괴되고 라벨이 떨어져 나가는 비극 앞에서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바늘로 물고기 비늘에 이름을 다시 꿰매 붙이며 세상에 완벽한 '질서'와 '계급'이 존재한다고 믿었죠. 자연을 자신이 정해놓은 상하 관계와 카테고리 안에 집어넣으려는 그의 집착은 어쩌면 삶의 혼돈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한 안간힘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자 룰루 밀러는 그의 광기 어린 삶을 추적해 나가면서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인간이 세운 그 정교한 서열과 분류 기준이 세상의 진실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그 오만한 확신은 결국 우생학이라는 비극적인 폭력으로 이어졌고, 남보다 우월하다는 착각이 타인의 삶을 얼마나 잔인하게 짓밟을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이 대목을 읽어 내려가며 제 마음 한구석이 찌릿하게 아파왔습니다. 나 역시 내 삶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혹은 남들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느낄 때 세상이 정해놓은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적 카테고리에 나 자신을 강제로 맞춰 넣으며 스스로를 학대했던 것은 아닐까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혼돈을 견디지 못해 억지로 덮어씌운 인위적인 질서는 결국 진짜 삶의 아름다움을 가리는 눈가리개가 될 뿐이었습니다.


'어류'라는 범주의 해체: 단어라는 감옥에서 벗어날 때 만나는 진실

현대 과학은 '어류(Fish)'라는 생물학적 군집이 사실은 인간이 편리하게 만들어낸 인위적인 개념일 뿐, 실제 계통 분류학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연어와 인간이 공유하는 조상이, 연어와 멍게가 공유하는 조상보다 훨씬 가깝다는 과학적 사실은 그동안 우리가 '물고기'라는 한 단어로 묶어버렸던 바닷속 수많은 생명들의 독창적인 차이점을 은폐해 온 셈입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선언은 단순히 생물학적 사실의 수정을 넘어, 우리의 삶을 억누르고 있던 편견의 틀을 완전히 깨부수는 해방의 열쇠로 다가왔습니다. 우리가 타인을 평가할 때, 혹은 스스로를 규정할 때 사용하는 무수한 라벨들—'성공한 사람', '낙오자', '유능함', '무능함'—역시 인간이 편리함을 위해 만들어낸 허구의 범주에 불과하다는 진리를 일깨워주기 때문입니다.

내가 세운 소박한 블로그와 일상의 수많은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남들의 화려한 블로그나 정형화된 성공 공식과 비교하며 "내 글은 가치가 없다"고 단정 짓던 오만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세상이 정해놓은 범주에 나를 맞추려 애쓰기보다, 그 범주 자체를 부수고 나라는 존재가 가진 유일무이한 결을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참된 글쓰기이자 삶의 태도임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입니다.


마치며: 무질서한 세상 속에서 서로의 유일함을 다정하게 보듬는 일

책의 마무리에 다다랐을 때, 저자는 세상이 우리에게 약속해 주는 완벽한 질서나 정답 같은 것은 없다는 사실을 담담히 인정합니다. 세상은 언제나 예측할 수 없는 혼돈으로 가득 차 있고, 우리가 구축해 놓은 단단한 탑은 언제든 일상의 작은 지진에도 무너져 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더 소중해지는 것은, 거대한 질서에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이 무질서한 우주 속에서 우연히 마주친 서로의 가치를 온전히 바라봐 주는 일입니다.

어류라는 거짓된 라벨을 떼어냈을 때 비로소 바닷속 다채로운 생명들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듯, 저 역시 타인과 나 자신에게 씌워두었던 무거운 라벨들을 하나씩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남들의 기준에 쫓겨 조급해하기보다는, 오늘 나에게 주어진 이 소중한 시간과 하얀 모니터 위에 펼쳐질 나만의 진솔한 고백들에 온전히 몰입하고자 합니다.

세상이 정해놓은 답안지에 지쳐 스스로를 자책하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이 책을 통해 당신을 묶고 있던 상상의 감옥을 부수고 나라는 유일한 존재의 참된 가치를 다정하게 마주해 보시길 진심으로 권해드립니다.